성웅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명언 모음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생애 연대와 나이별 주요 사건, 임진왜란 주요 전투와 성과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생애 했던 유명한 명언과 해설 모음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명언 모음
가. 이순신 장군의 생애
1545년 3월 8일 서울 건천동(중구 인현동)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남
1972년 28세 나이에 처음 별과(무과)에 응시
- 말을 달리는 시험 중간에 말에서 떨어져 왼쪽 다리가 부러졌는데 스스로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 다리를 동여 매어 주위를 놀라게 했으며 끝까지 말을 달려 완주했지만 낙방했습니다.
1576년 32세 나이에 병과(무과) 합격자 21명 중 4등으로 무과에 합격하여 함경도 최하위 무관인 권관(종 9품)으로 발령
1580년 38세 1월 서익의 모함으로 수군만호에서 파직
1587년 43세 조산보 만호가 됨, 무고로 파직되어 1차 백의종군
1589년 45세 정읍 현감(종 5품)
1590년 46세 고사리진첨사 (종 3품)
1591년 47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정 3품) 류성룡의 천거
1592년 48세 4월 12일 거북선 완성
- 4월 13일 임진왜란 발발, 5월 2일 일본군 한성 점령, 6월 14일 평양 함락
1592년 48세 5월 7일 옥포 해전(왜군 26척 파괴, 4,000명 사망), 함포 해전(25척 파괴), 5월 8일 적진포 해전(13척 파괴),
- 5월 29일 사천포 해전(거북선 첫 출전)에서 어깨에 탄환을 맞고 부상 (왜군 13척 파괴)
- 6월 2일 당포 해전(21척 파괴), 6월 5일 당항포 해전(26척 파괴), 6월 7일 율포 해전(7척 파괴)
- 7월 8일 한산도 해전(학인전 사용, 59척 파괴)
- 7월 10일 안골포 해전 (의병 고경명 금산 전투에서 전사, 20척 파괴)
- 8월 29일 장림포 해전(6척 파괴), 9월 1일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 부산포 해전(130척 파괴)
- 10월 6일 전주 목사 김시민 진주성 전투 승리
- 12월 명나라 이여송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옴
1593년 49세 2월~3월 웅천포 해전, 7월 14일 본영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옮김, 8월 10일 정철총통 제조
- 8월 15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 (4월 명과 일본 서생포 회담)
1594년 50세 3월 4일 당항포 해전(130척 파괴), 9월~10월 장문포 해전
1595년 51세 2월 둔전 경영 (밭을 직접 갈며 군자금 마련), 5월 소금을 제조하여 군자금 마련
1596년 52세 2월 둔전 경영, 5월 전염병 발생하여 죽은 병사를 위한 여제 지냄
- 9월 도요토미 히데요시 명나라의 책봉에 반발 강화파기, 10월 일본 조선 재침 통보
1597년 53세 1월 14일 20만 왜군 재침략
- 1월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 임명됨
- 2월 모함으로 서울로 압송되어 3월에 감옥에 들어감, 4월 1일 2차 백의종군
- 4월 13일 어머님 돌아가심,
- 7월 원균 칠천향해전에서 대패하며 전사
- 7월 2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
- 8월 28일 어란진 해전
- 9월 7일 벽파진 해전
- 9월 16일 명량해전 (13척과 32척의 작은 배로 싸움, 왜군 31척 이상 파괴)
- 10월 14일 아들 면의 전사 소식 들음
- 10월 29일 고하도에 수군진영 설치
1958년 54세 2월 17일 고금도로 수군진영 옮김
- 7월 16일 명나라 수군과 연합함대 편성
- 8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일본군 총 철수 명령, 퇴각하는 왜군을 조선 함대가 길목을 막아서 퇴각 실패
-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10명의 장수들과 함께 전사 (명 400척과 조선 80척의 연합군 480여 척이 왜군 함선 500여 척을 대부분 파괴)
- 11월 25일 잔여 일본군 부산에서 철수함
나. 이순신 장군의 명언 모음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랐다." 이순신 장군은 몰락한 양반의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가난과 차별을 겪으며 성장했습니다.
머리가 나쁘다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22살 첫 문과 시험에서 낙방하고 계속된 도전이 실패하던 중 무인 방진의 딸과 결혼하며 무과로 전향했습니다. 그러다 1576년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무과에 급제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과 시험에 성과를 내지 못하던 상황에서도 뜻을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丈夫出世 用則效死以忠 不用則耕野足矣
"장부출세 용즉효사이충 불용즉경야족의" 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 나라에서 써 주면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할 것이오 써주지 않으면 야인이 되어 밭갈이하면서 살리라.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최하 9품 말직으로 시작하여 14년 동안 변방의 말단 수비장교 생활을 했지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상관의 명령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절대로 굴복하지 않아서 파면을 겪었으며 옥살이를 감당했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백의종군하여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은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가는 것을 말하며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하자 정적에 의해 삼도수군통제사의 직위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터를 떠나지 않고 맞서 싸우며 공을 세워 다시 복직했습니다.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라!
"산처럼 무겁게 침착하라" 임진왜란 최초로 승리한 전투인 옥포 해전에서 한 말로 적이 충분히 사정거리에 올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한 번에 공격하여 승리했습니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받았다."
장군은 평생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남해 지역에 유행했던 전염병으로 고생했습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백의종군과 옥살이 등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전쟁 중이던 47의 나이에 해군 제독이 되었습니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장군님이 직접 지은 시구로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강산이 두려워하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로 강산을 물들이다."란 뜻입니다. 장군님의 칼에도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이겼다."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을 때 조정의 지원이 없어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고 물자를 마련하묘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이겼습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
죽기를 각오하면 오히려 살고 살려고 하면 오히려 죽게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한다는 이순신 장군님의 명언으로 전국시대 중국 제나라 장군의 오자병법에 나오는 말입니다.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려워한다라는 뜻으로 각자의 위치를 단단히 지키고 흔들리지 않으면 더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병법입니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말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정적들의 시기와 견제, 임금의 오해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이순신 장군의 지휘권을 빼앗은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패배하여 판옥선과 거북선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장군이 다시 복귀했을 때 열두 척의 낡은 배만 남았으며 한 척을 다시 건조하여 13척의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아 명향해전을 승리로 거두었습니다.
상유십이 미신불사(尙有十二 微臣不死)
미천한 신하는 아직 죽지 않았으며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혹은 금신전선 상유십이 (今臣戰船 尙有十二) 지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선조가 수군 전력이 부족한 상황이니 해전은 포기하고 땅에서의 전투에 힘쓰라는 명령을 했는데 포기할 수 없으며 충분히 싸워 이길 수 있다 주장을 하였습니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말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스무 살이던 셋째 아들은 장군에 대한 왜군의 보복 습격으로 목숨을 잃었고 첫째 아들은 장군과 함께 해전에 참전했습니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전투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의 생명보다 전투의 승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은 53살에 노량해전에서 전사했습니다.
전방급 신물언아사 (戰方急 愼勿言我死)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이상은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명언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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